일상/절기살이

[물오름달-춘분] 벼락 같은 소리로 일깨우자

누리-미 2020. 3. 22. 01:16

*24절기마다 한 편씩 연재하는 절기살이 글입니다.

낮에는 따뜻한 봄햇살 만끽하다가 밤이 되면 찬바람에 옷깃을 여민다. 3월 20일, 네 번째 봄절기 춘분이다.

춘분점(春分點)은 태양이 남쪽에서 북쪽을 향해 적도를 통과하는 점이다. 태양 중심이 적도 위를 똑바로 비추어 동쪽에는 양(陽)이, 서쪽에는 음(陰)이 있으므로 춘분이라 한다.

춘분날에는 밤낮의 길이가 똑같지만 이날을 기점으로 낮 시간이 밤 시간보다 서서히 길어진다. 추운 날이 가고 따뜻한 날이 왔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입춘에 봄을 생각하고, 우수에 마음을 녹이며, 경칩에 개구리처럼 튀어나갈 준비를 마쳤는데, 난데없이 영하로 기온이 떨어지는 꽃샘추위가 온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코로나19가 감염병 위험 수준이 6단계, 즉 세계적 대유행이라는 '펜데믹' 선언을 했다. 전 세계가 꽁꽁 얼어붙었다. 꽃샘추위는 새로운 봄을 맞기 위한 통과의례다. 한 해를 무사히 보내려면 꽃샘추위라는 시험을 잘 치러야 한다. 21세기가 되고 스무 해가 흘렀다. 남은 21세기를 무사히 보내려면 지난날을 진지하게 살피고, 이 위기를 잘 극복해야 할 것 같다.  

 

 

 

 

-꽃샘추위-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사람들이
봄꽃 시샘하여 심술부린다고 하지만
엄하고 무뚝뚝하지만 속정 깊은 아비 같지요

좋은 시절 왔다고 들떠 나대지 말고
좋은 시절이라고 어려운 시절 잊지 말고
힘든 시절 살듯이 늘 조심조심 살라는 말이지요 
(131쪽)

 

│ 삶을 진지하게 살고 있는가?

 꽃샘추위는 조금 따뜻해졌다고, 봄이 왔다고 들떠서 함부로 행동하지 말라는 하늘의 경고다. 함부로 뱉은 말로 다른 이에게 상처를 주고, 경솔한 행동으로 일을 그르친 적이 몇 번 있긴 하지만, 오히려 지나치게 진지할 때가 많다. 묵직한 성격 탓에 가라앉을까봐 겁이 나서 가벼운 사람이 되고자 애썼다. 주변에 알록달록한 색깔로 반짝이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회색빛이라고 생각했다. 친구가 말했다. '너는 짙은 초록빛, 단단한 기둥 갈색빛을 띠는 나무야.' 덕분에 진지한 내 모습 그대로 살아갈 용기를 얻었다.

 

현대 인간들 대다수는 도시에서 생활하고 있으므로 자연과 떨어져 살 수밖에 없어 자연을 느끼고 알 수 있는 기회가 크게 줄어들었다. 또한, 더욱 편하고 안락한 삶을 추구하는 인간의 과학기술 문명에 의해 야생성, 생명감수성이 사라진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라디오로 비유하자면 수신 안테나가 고장 나서 소리를 들을 수 없는 것이고 곤충으로 말하면 더듬이가 사라진 것이다.
(130쪽)

 

│ 내 생명은 길들여진 것인가, 야성의 생명력을 지니고 있는가?

무선인터넷에 길들여졌다는 생각을 한다. 시간을 허비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유튜브나 SNS 어플을 지웠다가도 금새 다시 설치하고야 만다. 변산에서는 버스 정류장에 나가느라 삼십 분 걷는 것쯤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서울에서는 지하철역까지 십 분도 걷기 싫어서 버스를 탄다. 눈이 뻑뻑하고, 근육이 없어지는 게 느껴진다. 인터넷을 쓰지 않을 때는 공유기 플러그를 뽑고,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면서 야성의 건강한 생명력을 지니기 위해 애써봐야 겠다.

 

 

*이 글은 작은것이아름답다에서 펴낸 <때를 알다 해를 살다>를 읽고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