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끄적끄적

개운한 아침

누리-미 2020. 2. 11. 11:19

과외가 없는 아침이다. 조금 더 누워있어도 되지만 어쩐지 부지런을 떨고 싶다. 기지개를 쭉 켜고 화장실로 갔다. 잔뜩 헝클어진 머리카락이 꽤 멋있다고 생각했다. 어젯밤에 비누칠 해둔 정혈대를 헹구어 베란다로 가져갔다. 엊그제 널어두었던 양말이 잘 말랐다. 양말을 거두고 그 자리에 정혈대를 널었다.

부엌에 가서 물 한 잔을 마셨다. 어제 설거지 해둔 그릇들도 잘 말랐다. 그릇을 하나씩 들어 찬장 제자리에 놓았다. 저녁에 먹을 현미를 씻어 불려놓았다. 이불을 개러 다시 안방에 들어왔다. 화장대 위에 있는 화분이 힘 없이 축 쳐진 것 같아 보여 베란다로 가져나갔다. 쌀 씻으면서 나온 쌀뜨물을 화분에 주었다. 

이불을 개어 장롱에 넣으려는데, 동생이 더럽다고 한 이불이 생각났다. 자크를 열어보니 오리털인지 거위털인지 마구 삐져나와 있다. 이불 싸개와 속이불은 모서리마다 실로 꿰매어져 있다. 꽤 독립적으로 산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엄마 손길이 닿은 물건들 속에 있다. 가위를 가져와서 엄마 손길이 닿은 자리를 기억하며 실을 잘랐다. 속이불은 베란다로 가져가 햇빛이 잘 드는 곳에 널었다. 세탁기 필터 속 말라 붙은 먼지를 꺼내고 이불싸개를 넣었다. 세제를 붓고 세탁기를 돌렸다.

세탁기를 돌리는 동안 청소를 하기로 했다. 현관 앞에 있는 발판을 탕탕 털어 식탁 의자에 걸고, 화장실 앞에 있는 발판을 탕탕 털어 변기 위에 올려두었다. 바닥에 있는 물건들은 책상 위, 침대 위에 올려놓고 청소기를 꺼냈다. 작은방부터 부엌, 안방, 거실, 베란다, 현관까지 청소기를 돌렸다. 청소기 먼지통을 보니 머리카락과 먼지가 수북하다. 동생이 엊그제 돌렸다고 했는데도 이 모양이다. 이 많은 먼지들은 어디서 오는 걸까 생각하며 청소기 먼지 필터를 씻었다.

걸레질은 안방부터 했다. 침대, 협탁, 화장대 위에 쌓인 먼지들을 닦고 바닥을 닦았다. 청소기가 안 닿는 곳에 팔을 뻗어 걸레로 닦을 땐 쾌감이 들었다. 구석구석 바닥을 닦으며 나름 잘 살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용기가 생긴 김에 미뤄뒀던 뒷베란다까지 닦았다. 얼마전 보일러가 고장나서 기름이 샜는데, 귀찮아서 방치해두고 있었던 터였다. 깔끔해진 뒷베란다를 보니 기분이 좋다.

양말을 차곡차곡 개면서 점심엔 무얼 먹을지 생각했다. 콩나물과 미나리를 데치고, 초고추장을 만들어야 겠다. 양파와 파프리카, 깻잎은 숭덩숭덩 썰어서 두부샐러드로 먹어야지. '상자 텃밭을 가꾸면 식탁이 더 풍성해질 것 같은데'라고 하던 찰나에 세탁기에서 빨래가 다 되었다는 노래가 나왔다. 깨끗해진 이불싸개를 널어놓고, 베란다 창문을 열었다. 화분들이 싱그럽게 반짝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