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촌스럽게

 

눈이 왔다. 다음 날에도, 그 다음 날에도 계속 왔다. 

아침마다 집에서 식당까지 가는 길을 빗자루로 쓸어서 치웠다.

서울에서 살 때는 눈이 많이 오던 날도 굳이 내가 눈을 치우지 않아도 괜찮았다. 

하지만 여기서는 내 집 앞은 내가 치워야 한다. 

눈을 치우지 않고 밟으면 그대로 땅에 붙어서 얼어버려서 미끄럽다. (치워놓으면 금방 녹아서 다니기 편해진다.)

 

촌스럽게 살면 게으름을 피울 새가 없다.

하지만 몸은 조금 힘들지 몰라도 마음은 편하다.

누군가(다른 사람, 다른 동물과 식물, 다음 세대 ...) 에게 짐이 되지 않고 싶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면서 살고 싶다.

그래서 촌스럽게 살고 싶다. 

  

 

 

#2 흐뭇하기

 

지난 가을, 콤바인으로 벼를 수확하기 전 갓돌리기를 했다. 

봄에 모판을 내고, 여름에 모내기를 하고, 피사리를 하던 때가 생각났다.

그래봤자 논에 간 날 수는 며칠 되지 않는다. 다 해님, 비님, 바람님이 길러주셨다.

그치만 농사 짓는 일만큼 성과가 눈에 확실히 보이는 일이 없다.

그래서 논과 밭에 나가면 흐뭇하다.

 

동물들과 아이들은 나를 웃게 만들어주는 소중한 존재다.

돌봐주는 것 같지만 사실은 내가 이들에게 기대고, 이들에게서 배운다.

내가 살아있다는 걸 느끼게 해줘서 고마워.

 

#3 기록

 

이렇게 촌스럽게 흐뭇한 나날들을 그냥 흘러보내기가 아쉽다.

그래서 사진을 찍고, 글을 써서 남긴다.

일기를 쓰고, 인스타그램도 하지만, 블로그에서는 더 자세하게 남겨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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