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주영아~“
경아 친구 주영이었다. 주영은 나도 잘 아는 애였다. 경아랑 안방을 같이 쓰다 보니 통화를 하면 상대방이 누구인지, 무슨 얘기를 하는지 알 수 있다. 주영이 말했다.
"낮에 파스타를 만들어 먹었는데, 재료가 많이 남았거든. 내일 너네 집에서 파스타 해 먹자고.“
경아가 반가워하며 말했다.
"그래!“
전화를 끊고, 경아는 내게 주영이 집에 와도 되는지 물어봤다. 통화 내용을 못 들은 척하며 그러자고 했다.
이튿날 아침이 밝고 우리는 손님 맞을 준비를 했다. 청소를 하고 식탁 위에 꽃병도 바꿨다. 열두 시쯤, 벨소리가 울렸다. 주영이 묵직한 가방을 들고 들어왔다. 가방 안에는 양송이, 파프리카, 방울토마토, 어린 잎채소 등이 있었다. 두 사람이 부엌에서 요리하는 동안 나는 마실 거리와 피클로 식탁을 차렸다.
구운 바게트와 파스타, 리조또, 에이드까지 풍성하게 차려 이야기를 나누며 점심을 먹었다. 잘 얻어먹었으니 설거지는 내가 하겠다고 했다. 두 사람은 커피를 마시러 나갔다. 설거지를 마치고 싱크대 거름망을 보았다. 양파, 마늘 껍질, 파프리카 씨, 방울토마토 꼭지, 시든 어린잎, 먹다 남은 피클, 에이드에 넣었던 애플민트 잎, 짧은 면 몇 가닥이 보였다. 거름망에 있는 것들을 꺼내 물기를 빼고 통에 담았다. 그리고 삽과 미생물 분무기를 들고 일층으로 내려갔다.
집 밖에는 화분이 여러 개 있는데 가장 작은 게 우리 거다. 다른 화분에는 대파, 상추가 자라고 있지만 우리 것은 무얼 키우기 위한 화분이 아니었다. 음식물 버리기가 아까워 만든 거름 화분이었다. 쓰레기봉투에 버릴 때는 벌레 없이 꽉꽉 채우기 위해 음식물을 냉동실에 얼렸다. 거름 화분을 만든 뒤로는 바로바로 버렸다.
가져간 음식물을 넣으려고 모종삽으로 흙을 팠다. 흙 속에는 까만 집게벌레가 기어 다니고, 하얀 구더기도 몇 마리 꿈틀거렸다. 날파리가 팔이며 얼굴로 날라들었고 이상한 냄새도 났다. 지난주까지 개미 한 마리 없었는데 날이 더워져서 그런가 하고 삽으로 더 쑤셔 보았다. 안쪽에 썩어가는 고기에서 구더기가 나왔다. 경아 생일에 미역국 끓이고 남은 소고기였다. 채소나 과일 껍질은 알아볼 수 없을 만큼 거의 썩었는데 고기는 버릴 때 덩어리 그대로 지독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음식물을 넣으면 벌레가 더 생길 것 같았다. 찌푸린 얼굴로 살충제 스프레이를 뿌리듯 미생물 발효액을 뿌렸다. 가지고 내려갔던 음식물을 들고 계단을 올랐다. ‘이웃집 사람들이 싫어하면 어떡하지, 경아가 그만두라고 하면 어쩌지, 흙이 묻은 채로 음식물 쓰레기봉투에 담아도 되나, 씻어서 담아야 하나, 벌레들도 같이?’ 고작 한 층으로 올라오는 사이에 오만 생각이 다 들었다.
집에 들어와 밀폐용기에 음식물을 넣고 손을 씻었다. 그리고 노트북을 켜고 검색창에 ‘친환경 거름’, ‘음식물 구더기’를 쳤다. 인터넷 기사나 블로그, 카페 글을 읽어보니 거름 만드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다.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씩은 흙을 뒤적여 주고, 마른 풀이나 낙엽을 넣어서 수분을 조절해 줄 필요가 있었다. 나 같이 시행착오를 겪은 분들이 많아서 위로가 됐다.
그리고 고기는 거름으로 만들기 어렵다는 걸 알게 됐다. 분해하는 데 오래 걸릴뿐더러 썩을 때 냄새가 고약하고 벌레가 잘 꼬이기 때문이었다. 또, 구더기는 굉장한 능력을 갖고 있었다. 이 먹보들은 엄청난 양의 음식을 해치울 수 있는데, 일 킬로그램 구더기가 네 시간 동안 먹을 수 있는 폐기물이 이 킬로그램이나 된다. 구더기가 생기는 건 마냥 싫어할 일이 아니었다.
빈 통과 삽을 들고 다시 내려갔다. 삽으로 흙을 뒤적여 썩은 소고기 덩어리를 찾았다. 덩어리 안에서 구더기 한 마리가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구더기가 지나간 더러운 자리가 깨끗해진다는 걸 알고 나니 징그럽지 않았다. 구더기는 흙에 넣어주고 고기 덩어리만 건져 음식물 쓰레기봉투에 넣었다.
음식물 쓰레기를 줄여보겠다고, 비닐봉투 덜 쓰겠다고 시작한 일이었다. 대부분 유기농으로 산 것들이라 거름으로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몸은 좀 귀찮을지언정 마음은 즐거웠다. 베란다 텃밭에 직접 만든 거름을 넣어줄 생각에 신나 있었다. 그런데 책에 나와 있는 것처럼 거름이 뚝딱 만들어지는 게 아니었다. ‘냄새 많이 나면 어쩌지. 구더기가 커서 파리 되면 어쩐다.’ 나 좋자고 다른 사람한테 피해주게 될까봐 주눅이 들었다.
그렇다고 베란다에 가져오면 경아가 싫어할 테니 밖에 두고 며칠 더 지켜보았다. 이전까지 음식물을 넣고 방치했다면 이번엔 신경 써서 물기를 조절해주었다. 공터에 가서 마른 풀을 가져왔다. 벌레가 늘어나지 않길 바라며 화분 안에 넣었다. 그리고 하루에 한 번씩 흙을 뒤적여줬다.
며칠 지나니 확실히 냄새도 덜 나고 벌레도 줄었다. 변산공동체 살 때도 음식물이랑 똥으로 거름을 만들기는 했지만 갖다 붓기만 할 뿐 어떻게 거름이 되는 건지 관심 가지지 않았다. 관심 없어도 큰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직접 망해보니 궁금한 점이 생기고, 구더기랑 지렁이, 미생물, 발효 공부도 하게 됐다. 노지에 가꾸는 밭이 있었다면 쌀뜨물이나 달걀 껍데기, 오줌으로 액비도 만들 기세였다. 상추와 고추뿐인 상자 텃밭에는 지금 있는 거름도 많으니 참기로 했다.
거름 만들면서 겪었던 시행착오를 나눌 수 있는 이웃이 가까이 있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이웃이 지렁이 분양해주고, 내가 미생물을 나눠주면 좋을 것 같다. 길가에 화분 놓고 상추나 고추, 토마토를 키우는 동네 할머니들께 혹시 음식물 모으시는지, 지렁이 키우시는지 여쭤봐야겠다. ‘나중에 좋은 거름 만들어서 드리겠다고, 지렁이 수 늘려서 다시 갚겠다고 하면 좋아하시려나.’ 벌써부터 기대만 앞선다. 먼저 경아랑 거름 화분부터 친하게 해주고 볼 일인 것 같다.